지금까지 강의를 몇 개나 했냐고 하자, 노낙경 원장은 기억은 안 나지만 세어보겠다며, 바탕화면의 강의 폴더를 열었다. 모든 강의 PPT가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개원 하고 난 후부터 강연한 모든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서울대 의대를 입학해서 의학 공부 대신, 록 음악에 심취했다. 당시 록 음악 마니아들에게 성지 같았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고정 게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고우석 원장이 아끼는 후배인 노낙경 원장은 그런 사람이다.
고우석: 보통 피부과를 전공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하는데, 혹시 의과대학 시절 생각나는 이벤트가 어떤 게 있나요?
노낙경: 사실 본과 1, 2학년 때 의학이 나하고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학업을 게을리했어요. 대신 KBS 제1FM이었나,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하는 전영혁의 음악 세계 게스트 DJ 활동하는 것을 비롯해서 다양한 음악 잡지 기자 활동 같은 걸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 미생물학 등이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 자체가 하고 싶은 생각이 진짜 안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한 번 휴학하고 본과 3학년이 돼서 임상을 돌아보니 내가 공부하는 것들을 나중에 환자 볼 때 쓸 수 있는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너무 재미있어서, 1, 2학년 때 까먹은 학점을 보충하기 위해 열심히 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기초 의학 할 때 하고 임상 의학 할 때 사람이 완전히 달랐다고 봐야죠.
고우석: 지금 생각하면 기초 1, 2학년 때 학교 교수님들이,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문이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볼 때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왜 잘 안 하시는지 의문이죠. 그냥 단순하게 교과서 읽어주는 식으로만 강의하고,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걸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동기부여가 안 돼요. 그냥 외우는 것 잘하는 사람만 1학년 때 잘할 수밖에 없는 그런 구조였던 것 같아요.
노낙경: 해부학이 싫었고, 조직학도 정말 싫었고, 병리학, 이렇게 3종 세트가 제일 싫었거든요. 근데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 그 세 가지를 제일 재밌게 하고 있어요. 필드에 나와서 진료하다 보니 실제로 환자를 보는 데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는 학문이고, 어떻게 보면 약리학이나 생리학 이런 것들보다도 훨씬 더 직접 필요한 거니까 매우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말씀하신 것처럼 동기부여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고우석: 그렇게 의대 생활을 남들과 좀 다르게 하셨는데, 피부과를 전공하게 된 과정이나 계기는 어떤가요?
노낙경: 본과 3학년 때 메이저 과인 ‘내외산소정’을 돌았는데 다 재밌었어요. 그 다음에 4학년 때는 마이너를 쫙 도는데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지만, 피부과가 독특해 보이긴 했어요. 그때는 지금 지금처럼 미용할 때가 아니라 피부과 의사는 아토피, 무좀 이런 것들 보고 조금 더 나아가서 약간 미용과 관련해서 여드름 보는 정도였으니까요. 수술하는 과들은 팀워크로 움직여야 하고 수술 장비도 필요하고, 내과 같은 데는 각종 진단 장비나 혈액 검사 등 툴이 없으면 안 되는데, 피부과는 작은 방 한 칸과 내 눈과 현미경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게 되게 독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개원하신 서울대 선배님 중 윤춘식 원장님이라고 계세요. 제가 본과 4학년 때 레지던트 1년차셨는데 다른 과 실습을 돌 때는 선배님들이 머리가 부스스하고 비듬이 가득 차 있고 수염도 하나도 안 깎고 수술복 너덜너덜한 채로 입고 계셨는데, 윤춘식 원장님은 하얀색 와이셔츠를 딱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하면서 스테이션에서 차트 정리하고 계셨어요. 그걸 보고 피부과에 가면 저렇게 살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번 흔들렸어요.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할 수 있는 성적이 아니었어요. 200명 중 10~20등 안에 들어야 하는데, 그 정도 성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삼성의료원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그쪽에서 다른 학교 사람들하고 많이 만나게 됐거든요. 소위 말해서 서울대 순혈주의 이런 것들이 있는 곳을 벗어나서 보니까 다시 메이저 과목들이 좋아지더라고요. 주로 외과 중환자실 좋아했고, 힘든 과들, 장기이식하는 파트 그 다음에 응급실 세 번 돌고 그랬거든요. 좋아하는 게 과를 떠나서 환자하고 직접 컨택트 할 수 있는 걸 되게 좋아하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부과 외래로 가서 보니 진짜 환자를 하루에도 수없이 대면하고 직접 터치하고 이렇게 만지잖아요. 환자들을 볼 때는 맨손으로 만져야 진단이 되니까 굉장히 클로즈 컨택트 하는 그런 과라는 게 마음에 들었죠. 그래서 사실 많은 부족함이 있지만 지원했고 그때 교수님들이 굉장히 너그럽게 받아주셔서 하게 됐죠.
고우석: 삼성의료원 피부과 레지던트를 들어갔을 때 이제 막 의국이 활성화돼 가고 있는 때였던 것 같아요. 그 시절 기억나는 교수님이나 에피소드 한 가지 이야기해주세요.
노낙경: 모든 교수님이 다 감사하고,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개인적으로는 초대 과장이셨던 이일수 교수님이 제일 영향을 많이 주신 것 같아요. 사실 석사가 지도 학생으로서는 아토피 피부염을 보시는 양준모 교수님이 소위 말하면 직속 사부님이신 건 맞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일수 교수님은 굳이 얘기하면 general dermatologist거든요. 염증성 질환부터 종양까지 다 골고루 보시고 동물 기생충성 질환까지 하시니까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한 가지만 계속 보는 사람들이 되게 스페셜리스트로 보여서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모든 것을 골고루 잘 볼 수 있게 교육받은 게 엄청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특히나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피부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이렇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두루두루 보는 그런 분위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이 되니까요. 그때 Vbeam 초기 모델인 SPTL도 외국에 있었고, 그런 부분들은 ‘피부과 의사가 이런 것도 하는구나, 신기하다’ 이런 걸 배웠고, 완전 유전 피부질환들을 열심히 공부하시고, 그런 질환을 어떻게 연구하는지 방법론 직접 보여주는 등 여러 분야의 밸런스가 좋았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의 많은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개원의로서, 피부과 의사로서 어떤 환자가 와도 두렵지 않다, 정확하게 진단은 못 해도 어떤 카테고리에 있고, 조직 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조직이 이럴 거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죠. 메디컬에스테틱 독자분들 중에서는 피부과 선생님이 아니신 분들도 계실 텐데, 평소에 접하지 않던 환자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전혀 못 잡는 경우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피부과 의사들이라고 다 그런 힘이 있진 않아요. 정말 그런 걸 두루두루 많이 보고, 접하고, 책에 있는 내용의 환자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어떤 질환을 만났을 때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쪽으로 가서 이쪽 가지쯤이니까, 이렇게 해서 하면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면 거의 맞게 가거든요. 그 능력을 전공의 때 배운 거죠. 그 다음에 마치고 군대를 백령도에 해병대 군의관으로 갔으니까 온갖 괴질, 이상한 피부병을 다 봤어요. 백령도가 최고 격오지니까 왕지네한테 물려서 온 사람들 3~ 4명씩 보고, 이상한 병들 그런 걸 보고 나서 시야가 엄청 넓어졌어요. 피부과 의사로서 기본적으로 모르는 질환의 환자가 왔을 때 완전 막막하다는 그런 것을 많이 없앤 부분이 수련 과정하고 군의관 시기였던 것 같아요.
고우석: 군의관 끝나고 바로 리더스로 들어가나요? 아니면 그 사이에 또 어떤 일이 있던 건가요?
노낙경: 펠로우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개원가에서 활동을 먼저 하고 있던 선배나 동기들의 모습을 봤고, 그때 리더스피부과도 막 뻗어나갈 때였거든요. 선배들이 젊을 때니까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어요. 개원가를 선택하는 데 경제적인 이유가 절대적으로 크진 않았어요. 환자를 많이 보면서 살고 싶은데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한 파트를 봐야 하잖아요. 알러지면 알러지, 건선이면 건선, 헤어면 헤어. 제가 좋아하는 파트가 있는데 대학병원의 특성상 원하는 파트로 못 갈 가능성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드름이라든지 주사 같은 게 너무 좋고 재밌는데 지금 티오가 건선 티오니까 넌 건선 피부외과를 해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고우석: 그 포인트는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그 말도 맞네요. 교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서브 스페셜을 자기가 못 정할 확률이 꽤 높은 게 현실이죠.
노낙경: 의국 사이즈를 봤을 때 세브란스, 가톨릭대, 서울대 이런 곳들에 비해 삼성의료원이 교수님 수가 적잖아요.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랬고요. 그러면 피부과에 되게 많은 파트가 있는데 교수님 한 분이 나가셔야 자리가 나는 거고, 그 자리를 들어가면 그 교수님이 하던 것을 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조금 고민이 됐던 게 원하지 않는 스페셜티를 갖게 되면 이걸 계속하는 게 안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때는 백반증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백반증을 연구하면서 사는 것보다 여드름이나 이런 걸 연구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로컬 나오면 다 보니까. 그리고 2006~2007년 시즌에 페이닥터 했던 사람들이 봤던 세상은 앞으로도 없을 거고 그 이전에도 없었을 정도로 피크였을 때니까요.
고우석: 그때 리더스피부과가 박병순, 박석범, 장경애, 정성태,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분들 중에 삼성의료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분이 없었잖아요. 아산중앙 아니면 서울대인데, 삼성의료원 트레이닝으로 처음으로 들어간 건가요? 아니면 그전에 선배가 있었나요?
노낙경: 리더스피부과의 첫 스타트는 서울대 의국 출신과 아산 의국 출신이 만나서 만든 거고 이후에 삼성 출신 중에서 지금 대표원장으로 계신 신장현 원장님, 그 다음에 정찬우 원장님, 박상진 원장님 이런 분들이 차례대로 들어왔죠. 삼성의료원 출신들이 전통적으로 좀 그런 게 있어요. 각 의국의 특성이 있잖아요. 서울대 의국, 삼성 의국, 아산 의국이 서로 결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그런 밸런스가 딱 좋게 된 상태에서 제가 들어간 거죠. 좋은 모습 보고 들어간 거죠.
고우석: 지금 규모로 생각하면 일찍 들어간 거고 그러면 그때 의국 선배분들이 오퍼를 해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리더스에 들어가게 된 과정은 어떠세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리더스와 같이 커진 규모의 병원이어도 초기에 들어갈 때는 지금 하고 좀 다를 것 같아서요.
노낙경: 이제 막 만들어져서 액티브하게 시작하고 이름을 알리고 그러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근무를 해줄 페이닥터가 필요했을 것 아닙니까? 그때도 크게 다르진 않았죠. 근무를 해주는데 장기적으로 더 오래 갈 수 있으려면 학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교류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 거죠. 사실 대학병원에서 열심히 펠로우 하고 그럴 때 연구 많이 하다가 개원가 나오는 순간 ‘나는 개원가 나왔으니까 이제 이런 건 끝’ 하고 완전히 단절되는 경우가 되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연구하는 것과 로컬에 나와서 학회 발표를 하거나 뭔가 새로운 프로토콜을 만드는 일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무관한 부분인 것 같거든요. 결국 중요한 건 기질인 것 같아요. 피부과 의사회에서 되게 열심히 발표하시는 분들을 봤을 때 학생 때부터 뭔가 연구에 뜻이 있고 이런 거라기보다, 또 어떤 장비가 있거나 새로운 제품이 나오거나 그랬을 때 그냥 회사에서 준 파라미터대로 ‘나 그냥 이렇게 평생 할 거야’ 이런 게 아니고, ‘이건 이렇게 써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더 잘 될 것 같은데’ 이런 것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리더스피부과가 처음 만들어져서 커가는 과정에서 필요했을 거라는 거예요. 선배님 한 분도 안 빼고 다 너무 똑똑하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그 선배님들이 환자 진료를 잘 보는 것과, 그리고 학회라든지 이런 곳에서 뭔가 발표를 하고 해외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는 것들이 성향상 저도 좋은데, 그런 것을 원하는 병원 네트워크에서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좋았던 거죠.
고우석: 그때는 추천받고, 오퍼를 받고, 의기투합이 되면 들어가서 장기적인 생각을 하고, 근무를 시작하고 물론 마음이 안 맞아 나가는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1~2년 근무하고 나올 생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던 시절이었죠.
노낙경: 알 수는 없지만 들어가서 일단 페이닥터를 한다면 1년 후나 2년 후쯤에는 서로 앞날을 같이 얘기해 볼 수는 있다는 생각을 당연히 상호 간에 갖고 있었죠. 제가 봉직의 없이 일한 지가 너무 오래돼서 요즘 분위기는 모르겠는데 많이 다르다고는 들었어요
고우석: 요즘은 봉직의 들어왔는데 2~3년 뒤에 미래를 같이 어떻게 해보는 것을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인 것 같아요. 약간 건너뛰어서 교수님을 제외하고 동기나 선배 중에 피부과 의사로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선배님을 꼽으라고 그러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요? 피부과 전문의 중에 여러 분이 있겠지만 그래도 그냥 한 분을 뽑아본다면요?
노낙경: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정찬우 원장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정찬우 원장님의 전체적인 의학 철학이라든지 이런 게 저하고 딱 맞지는 않아요. 사람 성격도 다르고 그럴 수 있잖아요. 생각하는 바도 다르긴 한데, 그래도 여러 가지 의미로 봤을 때는 제일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고, 치료 방식이나 환자에 대한 접근이라든지, 이런 부분은 영향을 많이 받았아요. 정찬우 원장님을 만나게 돼서 너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굉장히 많은 임팩트를 주셨던 두 분이 더 있는데, 한 분이 바노바기피부과 전희대 원장님이고 또 한 분은 고운세상피부과 안건영 원장님입니다. 보면서 많은 자극이 되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키는 데 써야 할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많이 주신 분들입니다.
· Adviser: 리더스피부과 청담도산대로점 노낙경 원장
· Source: 메디컬에스테틱 https://www.medicalaesthetic.co.kr/web/contents/contents-detail-view?newsId=2172